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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새로운 공동체는 성전이 세워졌다고 완성되는 것도,성벽이 세워졌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것은,사람입니다. 성벽을 완공한 느헤미야는 이제 사람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먼저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벽을 지키는 군인들이 아니라,성전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요?그건 그들에게 성벽을 지키는 일까지 맡긴 것이 아니라,성벽을 지키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군사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신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적들의 공격 앞에 창을 든 건축가를 세웠던 느헤미야가이제는 성벽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
허물어진 성벽 재건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조롱과 비웃음에도 묵묵히 공사를 이어갔으며,분열되어가는 공동체를 근근히 하나되게 했으며,이제 마지막을 향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대적인 산발랏과 게셈이 사람을 보내어 평화 회담을 제안해 왔습니다.이제 과거의 앙금을 걷어 내고 연합 전선, 평화의 관계를 맺자는 제안입니다.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들의 진심(속임수)을 알고 있었습니다."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하나님의 역사가 먼저란 말이며,하나님의 역사로서 감당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우리의 우선 순위와 하나님의 방식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산발랏이 또 다른 꼼수를 부리기 시작합니다.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 내용이 공동체에 전달됩니다.느헤미야의 속..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 보다,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보다,어떤 믿음으로 살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이었지만,황폐한 예루살렘에 부임한 관리였지만,모든 것을 내려 놓고,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녹을 받지 않았다.이건 자랑이 아닙니다.그것보다 더 한 일도 했을 것이기에,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에,하나님의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기에,아니 무엇보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것이기에,그 어떤 행동도, 그 사역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인가 봅니다.조금만 수고해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조금만 헌신해도 자랑하지 못해 입이 간지러은 그런 마음..
추석 명절이라주일 오후 늦게 고향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6시간을 달려 고향집에 도착했고 늦은 시간이라 잠을 청했습니다. 화요일이면 아버지께서 투석을 받으시기에,부모님과 나들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월요일 하루 밖에 없기에, 월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거가대교를 건너, 송도 케이블카를 타고, 영도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거제도를 거의 벗어날 쯤,13년된 카니발 계기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베터리 등과 브레이크 등이 동시에 들어옵니다.그리고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급히 택시를 하시는 집사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증상을 설명드렸더니,빨리 정비소를 찾으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차를 돌렸습니다. 시동을 끄면 다시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고향 집으..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하였지만,주님은 그들을 사도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을 정도만 선택하지만,그 선택이 주님의 선택으로 바뀌고,그 순간, 주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교회교인가 그리스도교인가'를 읽으며 깨닫는 생각.. 2024.08.13.
주일 설교 준비를 하며,영광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순교한 야고보, 풀려난 베드로,우리는 야고보보다 베드로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물으신 주님은,그 잔을 함께 마시며,그 세례를 함께 받은 야고보가세상의 영광에 사로잡혀 보좌의 좌,우편에 앉는 것보다,더 큰 영광을 누리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물론 베드로로 살아난 것만 묵상한다면,우리의 묵상은 잘못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를 풀어내신 하나님은,그를 예루살렘에 두지 아니하시고,베드로도 기약할 수 없는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사탄이 청구한 인생이지만,주님을 그를 위하여 기도하셨고,이제는 남이 띠를 띠우고, 남이 인도하는 대로,이제는 주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영광을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가졌기에, 하나님께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누군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기에, 어쩔 때는 시기심 가득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아니 기도라기 보다는 뒷담화라고 해야 할까요? 달리는 말은 차안대라고 하는 눈가리개를 합니다.혹시라도 가까이서 달리는 말들 때문에 놀라거나 겁을 먹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오늘을 달리는 저 자신도 차안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으스대지 아니하고,남들과 비교해서 절망하지 아니하며,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삶, 가정,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힘껏 달려야겠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마부가 되어 주시길 바라며..오늘도 비교가 아니라, 비밀을 아는 삶이 되..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보냄을 받았기에, 세례 요한은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누가 나를 보내셨는가?왜 나를 보내셨는가?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알았기에,세례 요한은 불꽃같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광야에서 성장했으며,기득권 세력을 향하여 사자후를 토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이 보내셨는데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보내셨음을 알기에,세례 요한은 인내할 줄 알았고, 물러 설 줄 알았습니다. 주가 오실 때까지 그는 인내하며, 기다리며,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려야 하리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도 고민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오실 ..
요즘 아침에는 사무엘서를 읽고 있습니다.어제 본문은 사무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왕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사무엘은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한마디로 열받았다는 것입니다.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세워달라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먼저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즉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무엘만 보았고,결국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결정한 것입니다.또한 사무엘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만 보았습니다.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기에 기뻐하지 아니하고 있지만,그들을 위하여 왕의 제..
목사들 사이에서도 진보냐 보수냐로 편가르기를 합니다.제게도 많은 분들이 어느 편이냐고 묻습니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저는 자신들의 편이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어느 교수는 우리 나라에 진보는 없다는 표현을 했습니다.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진보적 보수와 극보수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를 합니다.특히 목사로서 정치적 편향성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왜냐면 우리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 개혁이기 때문입니다.개혁주의 신앙을 따라, 날마다 개혁하며 나아가야 하는 삶이 바로 우리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사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어찌할 수 없지만,개혁을 외치는 몇몇 기독교 신문들도 그 편향성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물론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