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80주념 기념 예배 본문
늦은 휴가 4일차입니다.
아침 일찍 속초의 숙소에서 일어나 잠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일어나 아직은 어두운 바닷가를 보며 일출의 순간을 다시 묵상합니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제 출발 준비를 합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고, 천안 신대원으로 출발합니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멉니다.
바로 가는 길이 없고, 서울까지 들어갔다가 천안으로 내려갑니다.
7시에 출발했지만, 천안 신대원에 도착하니 10시 45분입니다.
동기 목사님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교회를 섬기는 동문들이 모교의 80주년을 맞이하여 많이 모였습니다.
돌아보면 참 신기한 시간들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을 때,
송도 신대원 건물에 기숙사가 있었습니다.
4개의 철제 침대에 8명의 기숙사생이 함께 생활했는데,
저 하나를 빼고는 모두 신대원 전도사님들이었습니다.
왜 신대원생들을 전도사님이라고 부르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20살 대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전도사님들의 포스에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했을 때,
그 기숙사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신대원생들...
신앙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었던 동기들이 있었기에,
비록 막내라는 타이틀을 달고 참 많이도 까불었지만,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신대원은 송도 시대를 끝내고, 천안 시대를 마지하게 됩니다.
아직은 부대시설이 부족했던 첫 학기..
PCS폰이 터지지 않아,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방 창쪽에 쪼르륵 세워 두고,
전화가 오면 이름을 부르며 전화 받으러 달려오던 그 시절,
식당 사장님이 고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몇 주를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진풍경,
목요일에 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들 서울로 올라가 구경하고 내려갔던 그 방황의 추억들.
이십대 전도사들이기에 가능했던 객기들이었는데..
이제 5,60대의 중년들이 되어 27년 전을 떠올립니다.
설교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 생각납니다.
교회의 짐이 되지 말자..
교회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도록 하자..
어느 순간, 교회 때문에 힘들어 하던 나는,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교회를 잊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나 개인의 회개 뿐만 아니라, 사역의 회개, 사명의 회개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은
남편의 장례를 노회 목사님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하셨다 하십니다.
또한 조가를 하겠다는 애양원 교회의 교인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신사참배 반대를 외치다가 옥고를 치룬 목사님의 장례를
신사참배를 결의한 사람들에게 맡길 수 없었기에,
고려신학교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장례를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믿음대로 살았고, 믿음대로 죽었던 그 선배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귀한 학교에서 7년을 공부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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