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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누구나 내 편이 있습니다.지지해 주고 격려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가끔 내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남의 편일 때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사르밧 땅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다. 하나님이 명령하셨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엘리야가 기대했던 것은,사르밧 땅에 도착하면 한 과부가 엘리야를 맞이하러 와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고 자신을 영접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여인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나뭇 가지를 줍는 가난한 여인..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움큼과 얼마 남지도 않은..
무게를 확인하는 여러가지 수치가 있습니다. 다양한 수치로 우리는 그 무게를 측정하고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게를 무겁다고 이야기하거나 가볍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 수치가 아니라 주관적 느낌일 때가 많습니다. 말씀의 무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책의 무게가 아닙니다.이 말씀을 읽고 받아들일 때,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깃털보다 더 가볍게 여겼기에,그는 그의 삶을 제어하지 않았습니다.이전의 모든 사람들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습니다. 아합의 그런 태도는 그 시대의 모습을 결정짓게 했습니다. 여호수아..
세번째 논쟁,바리새인들 가운데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와서,"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왜 물었을까요?성경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목적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도대체 무엇을 시험하고자 하였을까요? 자신들이 평생을 연구하여 내린 결론으로,예수님의 지식을 평가하려고 했을까요?이 계명을 이야기하면, 다른 계명을 이야기하고,다른 계명을 이야기하면, 이 계명을 이야기하여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 목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율법사의 모습 속에서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말씀도 크고 작은 것으로 구분하여,아니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하여,크고 중요한 것은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고,작고, 덜 중요한 것은 은근슬적 눈 감아주는,스스로 아량을 가진 목사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모..
권위를 묻는 종교지도자들에게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권위자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 가지 논쟁이 등장합니다.먼저 바리새인이 헤롯 당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민족주의자였던 바리새인들이,이방인 통치자였던 헤롯을 따르는 이들과 손을 잡았습니다.그들이 가진 신념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미사여구 속에 담긴 그들의 불신앙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는 주님 앞에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참되시고... 아멘이신 하나님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
고난 주간 둘째 날이자, 논쟁의 날 아침,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은 세가지 비유를 들려 주시는데,오늘 본문이 마지막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오라고 청했습니다.청한 사람들이라고 했으니,이미 그들은 잔치에 참여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며,임금은 그들을 통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다시 말해 왕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싫어하였습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청하였지만,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의 일에 집중했습니다.끝내는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
사람 사는 이야기에 종종 눈물이 난다.잘 사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잘 살아 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다.살아야 하니 사는 사람...그래도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그들의 이야기에 눈물이 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난 잘 사는 사람일까?잘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일까?아니면 그래도 살아야 하니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일까? 오늘 하루도 나의 삶이,다른 사람에게 눈물이 될 수 있다면.아니 하나님의 입가에 미소를 머글게 할 수 있다면,그래도 괜찮은 사람인데... 오늘도 욕 봤심더.. 2025.03.19.
강도사 시절..집에서 교회까지 차로 10분 거리에서 살았습니다.한 번은 늦잠을 자서 그만 새벽기도회 설교에 늦은 적이 있습니다.간신히 교회에 도착했는데, 선배 목사님께서 인도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랬던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대타들이 있었기에, 설교자가 늦어도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대타였습니다. 3일동안 강도사 고시를 치른다고 교회를 비웠던 전도사님이..오늘 새벽에 보이지 않습니다.새벽 운행을 도착했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급히 본문을 살펴 보고...잠바를 입고 강대상에 올라갔습니다.그리고 찬송가를 부를 때에 헐레 벌떡 들어옵니다.이제 체인지하면 되겠다 싶었는데..말씀을 읽을 때에야.. 손짓으로 설교 본문이 없다고 난감해 합니다. 결국 대타는 내려오지 못하고,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
한 해를 시작하며, 제대로 된 목회를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관련된 책들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안됩니다. 칼을 제대로 안갈았나 생각했는데... 칼은 하나님께서 제대로 갈으셨습니다.다시 주님 앞에 무너게 하셨고,다시 주님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 2025.03.12.
예수님의 제자 훈련..어떤 인생이 행복한 인생인지를 알아야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제자는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그게 바로 팔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빛과 소금에 관한 말씀입니다.즉 인생의 행복은 노력과 수고를 통하여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우리의 존재, 그리고 삶,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우리는 이미 소금이며, 빛입니다.물론 주님의 부르심, 주님의 구원이 우리를 변화시키기 전에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부패한 존재이며, 어둠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안에 말씀을 주시자, 우리는 소금과 같이 맛을 내는 존재가 되었고,빛과..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나섰지만,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도,무리가 아닌 제자를 붙드셨습니다. 욕심을 따라 움직이는 무리보다,가르침을 따라 움직이는 제자가 필요했기에..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어렵지 않습니다.팔복...복된 존재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인생이 되는 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시편 1편에서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가 복된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붙드는 삶이 복된 인생입니다. 팔복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웃을 사랑하는 자,그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지만,천국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땅을 기업으로 받는...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선언...오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