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2016.01.28. [오늘의 묵상]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눅 8:40~56) 본문
예수님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돌아오시길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배를 타고 돌아오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인파들을 보면서 궁금하다.
왜 그들은 서슴치 않고 기약없는 기다림을 붙들고 있는가?
그들의 기다림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져 갈때..
기다림에 초조함을 더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바로 죽어가는 딸을 살리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아빠다.
지난 밤 부터였을까?
예수님이 떠나셨던 나루터에서 아쉬워하며..
풍랑이는 호수를 걱정스러워하며..
밤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아픈 딸을 둔 아빠다.
예수님이 도착하자 마자
수많은 무리를 밀치고
그 기다림보다 더한 기다림을 표현하며
그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자기 집으로 가시길 간구했던 아빠..
많은 무리때문에 속도가 자꾸만 늦추어진다.
한 여인 때문에 무리는 급기야 멈춰섰다.
이러다가 혹시...
누가 나를 만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나의 능력이 빠져 나갔다.
제발 그만하고 그냥 가시죠..
이러다가 정말 큰 일이라도 일어나면..
놀라운 일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별로 놀랍지 않다.
그냥 우리 딸도 저런 능력을 입었으면..
그런데 염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혹시라도 일어나지 않길 그렇게 바랬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딸이 죽었다.
지난 밤 그렇게 기다리던 모든 소망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 그는 딸의 죽음도 보지 못한 못난 아빠가 되고 말았다.
왜 저 여인은 병에서 고침을 받고.. 내 딸은 죽어야 하는가?
믿기만 하라.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다 나가라..
뭘 그리 비밀스럽게 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절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주재권을 거절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가야 한다.
여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소망의 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만지시고.. 소녀야 일어나라 하신다.
소녀가 곧 일어난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 불안, 한계를 뛰어넘는다..
오늘 내 기다림의 한계가 어디인지 다시 묻게된다.
넌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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