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2015.01.23. 큐티산책 20 막 8:1~13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본문

묵상/여백 묵상

2015.01.23. 큐티산책 20 막 8:1~13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김성수목사 2015. 1. 22. 21:39

 

1. 좋은 풍경이 마음에 남기도 하지만, 좋은 음식이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여행를 떠나는 이유가 그러할 것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을 때, 가야할 곳도 좋지만, 먹어야 할 것이 있으면 더 좋다.
매 번 가는 곳이지만, 또 보고 싶은 곳도 있지만, 또 먹고 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이 좁은 땅 덩어리에 가보지 못한 미지를 찾기보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다시 그곳을 꾸역꾸역 찾아가나 보다. 
배가 불러도, 더 이상 들어갈 때가 없어도 우리는 그 맛에 대한 흔적 때문에 다시 그곳을 찾는다. 
이제야 저녁 10시에 수원 용성통닭을 찾았던 이유를 발견했다. 유레카.. 

2.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그리고 갈릴리 호수를 거니셨다. 
이 일정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큰 무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있은지 사흘이 지났으니 이제 그들의 수중에는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3.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 사진을 보면 사경회를 위하여 교회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풍경이 참 재밋다. 
이불을 짊어지고, 솥단지를 지고들 온다. 
일주일, 이주일은 기본이었으므로 그렇게 먹고 자고 지내야 했나 보다. 
어쩌면 본문에 등장하는 이들보다 한국의 선조들이 더 지혜로왔는지 모른다.
물론 이동하며 진행된 사경회에는 그리 쉽게 대처할 수 없었을지도...

4. 사흘을 따라다녔다면.. 
어쩌면 그들 중에는 가버나움에서부터 예수님을 좇아 이방 땅을 돌아다닌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두로에서나 시돈에서부터 예수님을 좇아 갈릴리까지 들어온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로 보아 아마도 이방 땅에서 예수님만 보고 좇아온 이방인들이 아닐까 싶다. 

5. 얼마나 좋았을까? 
귀신을 내어 쫓고,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고, 
그들은 놀라운 일을 행하는 예수님을 따라 호기심과 갈증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그대로 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 먹을 것이 없고, 굶주림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돌아간다면 자연히 기진하여 죽는 이도 발생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6.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만사형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어도 배 고프고, 예수 믿어도 수중에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다. 물론 예수 믿어도 가는 길에 기진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도 우리는 7병2어의 기적을 구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런 종교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7. 예수 믿는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
그러나 예수 믿으면 문제가 생길 때 해결해 주시는 든든한 명품백이 하나 정도 생긴 걸로..
그러나.. 
그러나..
길게는 나흘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에게 한끼 식사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수넴 여인처럼 기름이 그치지 않는 항아리를 주시든지.. 
한끼 먹고 힘내서 돌아가라..
죄송하지만 3,4일 굶고 한끼먹고 다시 3,4일 굶으라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8. 왜???
예수님은 먹고 남은 일곱 광주리의 기적에 주목하길 원하시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며 소망이다. 
물고기와 떡을 드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다. 
주님 안에서 먹고 마시는 천국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인 것이다.
기대..
주님 안에서 먹고 마시는 기쁨에 대한 기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맛보기..
그래서 다시 그 자리에 나아가 은혜를 사모하고 다시 맛보여 주시길 기도하는 성도의 갈망..
그게 답이다. 

9.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기쁨과 평화를 주님의 성만찬에서 맛본 사람은..
문제가 훈련의 기회가 된다. 축복의 기회가 된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맛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이 놀라운 기쁨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