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그리는 목자(김성수 목사)
2019.01.25. 고린도전서 묵상 19 성만찬의 은혜 본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
자유는 방종이 되고, 믿음이라 이야기하지만 자기 신앙이 되고 만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이지만 ,
세례와 성찬이 은혜의 방편이 아니라 자기 방종의 변명거리가 될 때,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향한 논쟁이 교회 안에 있었다.
물론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님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문제가 있다.
성찬에 참여할 때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듯,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고 마실 때 그 속에 담겨진 영적인 덫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상의 제물이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바울은 이미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즉 악한 영이 우상의 뒤에 숨어서, 우상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성도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혹여라도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울은 성만찬을 예로 들어 다시 설명한다.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며,
우리가 먹는 떡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다.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몸이 이루신 구원 사건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세우신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다.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것이 아니다.
주의 식탁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내포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신비이다.
그리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명백해지는 순간이다.
오늘 하루 내 삶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길..
그리하여 내 삶의 작은 순간마저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은혜에 참여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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